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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포 스테이션(Four stations)-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by 나?꽃도둑 2020.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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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9373#

 

포 스테이션

태국 독립영화의 숨겨진 재능 분송 낙푸의 재발견. 태국의 4개 지역, 철도 옆에 살며 삶을 지키려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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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가볍게 시작하고 싶다.

퇴근하자마자 매표소로 달려가서는 제일 빠르게 볼 수 있는 영화 아무거나 주세요! 한 대가를 톡톡히 받았다. 이 영화로 진지하고 무게 잡고 리뷰를 쓰다가는 아마 비명을 질러대고 씩씩거릴 게 분명할 만큼 이미 여러가지 이유로 지쳐버렸다. 그 다음날 영화 선택도 아무거나로 결정했더니 손에 쥔 영화표는 <빨란 마후라>, <또순이>이가 들어있었다......

 

어두운 통로를 따라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스크린에서는 허리가 구부정한 노승이 지팡이를 또각또각 짚어가며 느리게 걷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옷차림은 집작컨대 태국이나 미얀마 어디쯤으로 보였다. 카메라는 노승이 걸어가는 느린 보폭만큼 더디더디게 앞으로 나아갔다. 갑갑했다. 왜냐하면 나는 영화를 보려고 헐레벌떡 뛰어왔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알아주기는 커녕 영화는 시종일관 서두루는 법이 없었다. 시골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남루한 일상을 느리고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과실수에 농약을 뿌리는데 바람이 불고, 낮에 씩씩하게 뛰어놀던 아이가 갑자기 아프고, 승려들은 마을을 돌면서 시주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국경을 넘어 밀입국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빚을 갚지 못한 아내가 국경 밖으로 쫓겨가는 걸 막기 위해 산지 두 달밖에 안되는 오토바이를 팔고, 고아가 된 아이는 친적집에 오지만 눈치밥을 먹어야 하고, 어린 딸의 임신과 낙태를 지켜봐야 하는 가난한 부모가 나오고, 어른들은 원수지간인데 아이들은 천진스럽게 어울려 사이좋게 놀고, 남의 일인데 내 일처럼 나서서 해주는 마음씨 좋은 사장이라는 사람, 아무튼 간간히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런 영화였다.

 

어라, 한참 보고 있는데 좀 이상했다. 이야기가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이다. 판타지도 아니고, 시간의 흐름과 이야기의 순차적 흐름을 교란시킬 목적도 없어 보이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 있는 영화는 제각각 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따로 국밥처럼 그렇게 차려진 밥상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영화가 끝났다. 어이없게도... 여기저기서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저거? 끝이 뭐 저래? 피식피식 웃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허탈해 하는 사람도 보였다. 그랬다. 관객과 영화는 온전하게 호흡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건 필시 속도감 있고, 분명한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려는 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의 입맛에는 영 밋밋하고 싱겁기 짝이 없는 영화였다. 영화 초반부에 하품을 서너 번 했던 것 같다. 인내심을 가져보는 것도 그닥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아무거나 본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일임을 알았다. 식당에 들어가서 귀찮다고 아무거나 주세요 했다가 낭패보는 느낌하고 똑 같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형편없다거나 볼 가치가 없거나 생각거리가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행히도 뒤로 갈수록 영화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누가 어느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어이 없게도 나중에 영화표를 들여다 보고서야 제목이<포 스테이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태국의 4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북동부, 남부, 중부, 북부 네 개의 지역에서 철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하층민 사람들의 애환을 담아냈다. 감독은 분송 낙푸다 1996년에 <할아버지와 손자>로 방콕영화제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하였으며, 1997년작 <집으로>로 방콕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포 스테이션>은 그의 두 번째 장편 극영화라고 한다.

 영화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정보를 읽고보니 영화의 내용이 이제서야 한줄에 꿰어진다. (이런 간사한!) 따뜻하고 애달프고 순수하고, 가엾고, 가슴 아픈 영화다. 사실 극영화라고 하지만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장식이 없는 영화다. 또한 이 영화의 미덕은 공동체적인 가치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고, 원수지간으로 지내던 어른들은 아이가 아프자 함께 병원으로 달려가고, 투의 아내를 찾아주기 위해 사장은 발 벗고 나서고, 병원비 마련을 위해 팔려나간 물소를 찾으러 집을 나서는 소년까지 말이다. 결 고운 심성과 소박한 삶 가운데서도 삶에 시비를 걸어오는 것들은 역시 돈이다. 돈이 없어서 병원비를 꾸러다니다 결국엔 물소를 팔아야 하고, 아내의 빚을 갚기 위해 밀입국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고단한 삶이 있었다, 그 고단한 삶을 탈피하고자 그들은 길게 뻗은 철로위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기도 하고, 철로 위에 서서 끝을 모르는 철길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아이가 아파 병원을 데려 갈 때 건널목에서 어서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그들의 표정은 아슴푸레한 저녁의 암담함마저 겹쳐져 삶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웃을 수밖에 없다. 도축장으로 팔려나간 물소가 풀이 무성한 물 웅덩이에다 몸을 잠구고는 여유롭고도 황홀해하는 장면이란! 그 녀석이 어떻게 그 안에 들어가서 여유를 부리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애타게 찾아 헤매는 소년에게 발견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영화관을 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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