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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간 책들...그리고 흔적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 결국엔 그가 옳았음을

by 나?꽃도둑 2020.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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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떤 상황과 맞서야 할 때가 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진즉에 물러나 앉거나 아니면 싸워나가야 한다. 조지 오웰 또한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 상황에 맞서 싸워야 한다”(64쪽) 고. 오웰은 부조리한 상황에 맞서 펜을 들어 제국주의, 파시즘, 공산주의,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본성과 이면을 파헤치는 일에 무엇보다 열중하였던 것은 뭔가를 쓰고자 하는 욕구도 한 몫을 했을 터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통찰과 양심은 감상적인 믿음을 넘어서 매우 날카롭고 정확하게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데 있다. “자유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건 다른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이다.”라고 했던 그의 펜 끝은 그래서 무디지가 않다. 거침없이 까발리고 비판한 탓에 출판을 거부당하기도 했고 아나키즘적인 정치적 견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오해로 출판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한 인간의 성장에는 많은 일들이 개입되어 있다. 실패가 인생의 유일한 미덕인 것처럼 보였다는 조지 오웰의 인생관은 자본주의가 갖는 추악한 계급적 경쟁의 경험과 식민지 경찰을 통해서 형성되어진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는 항상 시대적 요구에 감응한다. 전체주의에 맞서고 자기 의견을 내야만 하는데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쓴다는 건 넌센스라고 그는 일갈하였다.

“우리가 가라앉는 배에 있다면 가라앉는 배에 대해 생각하듯이 지금은 정치적인 시대다.” (438쪽)

정치학자 크릭은 오웰을 ‘정치적 저술가’로 부르지 않았던가. 이번 한겨례 출판에서 나온 29 편의 에세이는 그의 정신적 편력을, 사상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여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가당착에 빠진 모순적인 일면을 보인 한 인간이었고, 고뇌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을 왜 이상으로 삼았는지를 엿보게 될 것이다. 또한 오웰은 런던 뒷거리 시골울타리에 핀 꽃들, 정치적 팸플릿의 필요성, 아주 시시한 화제에 대해서도 애정을 느꼈고 그런 것들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었다. 그러한 다양한 주제들을 한 줄에 꿰는 단어가 있다면 단연코 ‘자유’일 것이다. 표현의 자유, 몸의 자유, 나 좋을 대로의 자유, 수정같이 맑은 정신의 자유!

 
책장을 넘기다 보면 정신을 깨우는 번뜩이는 문장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지금 이 시대도 여전히 유효함을 알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인간을 이중적인 존재로 보았고 완벽한 도덕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은 대부분 착해지려고 하지만 너무 착해지려고 하지도 않고, 늘 착하지만도 않다.” 라고 썼다. 그가 얼마나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이 뛰어 났는지를 글을 읽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오웰은 말한다.

“우리 시대의 정치적인 글쓰기는 거의 다 조립식 장난감 세트의 부속처럼 맞추어진 구절들로만 이루어진다. 그것은 자기검열의 불가피한 귀결이다. 솔직하고 힘 있는 글을 쓰려면 두려움 없이 생각해야 하며, 두려움 없이 생각하게 되면 정치적인 통념을 따를 수가 없다....(중략) 강요된 통념이 있으면 어디서든 좋은 글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223쪽)

그가 좋은 글을 썼다는 건 두려움 없이 생각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또한 그가 피력했던 수많은 문제에 대한 견해와 입장이 시대를 지나오면서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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