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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내 맘대로 읽기

가을밤에 읽는 하이쿠10

by 나?꽃도둑 2024.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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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도
즐거움이 있어라
저무는 가을

      -부손


어렸을 때는 이런 맛을 몰랐다
외로움에도 즐거움이 있는 줄
오랜 시간 살아보니 알겠다
그것도 저무는 가을에...

오롯이 내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나 침묵할 수 있는 시간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무언가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시간은
철저히 혼자가 되었을 때 찾아 온다

가끔은 일부러 나를 고립시킨다
유흥과 유혹의 시간을 거절하고는 마음의 들뜸이 저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곤 한다
그러면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텃밭에 주저앉아 풀을 뽑곤 한다

가끔은 실패할 때도 있다
가령 갑자기 심심하거나
들뜸이 가라앉지 않을 때
평정심이 느닷없이 무너질 때는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달래려 차가운 맥주를 몸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흘려보내거나 잠을 자거나 전화통을 잡고 누군가와 수다를 떨게 된다

왜  외로움은 두 가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을까?...
혼자임을 견디기 어려워 밖에서 누군가를 무언가를 찾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안에 있는 것들과 마주하고자 기꺼이 자발적 고립을 즐기는 사람도 있으니 이게  성격에서 오는 것인지 취향의 문제인지 모를 일이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외로움은
나잇대 별로 다가오는 느낌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다르다는 점이다
외로움에도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이 먹는다는 건, 경험이나 사유의 공간을 넓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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