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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건져올린 에세이

나를 만나는 시간

by 나?꽃도둑 2024.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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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옵니다 책을 읽으려고 앉았지만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선은 자꾸 엉뚱한 곳에 가 있습니다 책을 향하지 않고 마음 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마음에도 내립니다 차갑고 시린 겨울비가 내립니다.

투둑 투둑 후두둑
 
일정한 음률로 고요를 깨우고는 빗소리들로 세상을 꽉 채웁니다.
어느새 내 마음과 머릿속에도 빗소리가 가득 들어찹니다.
그것은 흘러흘러 마음 저 밑바닥까지 훑고 지나갑니다.
말이 되지 못해서 울음으로 채워졌던 지난 시간들...
도저히 알 수 없지만 일어난 일들의 잔해들이 그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더는 나를 휘두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끔씩 그곳이 위태로울 때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죠.

산다는 게 뭘까요?...
마치 뒤로 걷는 것처럼 풍경과 시선은 앞에 있는데 몸은 자꾸 뒤로 가는 것과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잘 가고 있는지 가끔 돌아보게 되는....
내가 바라보는 풍경속에 담기는 모든 것이 마음이라면  
앞으로 가야만 하는 몸은 순응하거나 부딪혀야 하는 현실이거나 실재이겠죠
그런데 마음이 자꾸 제동을 걸곤 합니다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도 하고 쉬게도 합니다.
간혹 마음이 없어지기도 해서 몸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도 됩니다
그럴 땐 잠시 쉬어야 하겠지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동물입니다. 하나의 몸에 너무 많은 것들이 깃들어 사니까요.
여러 감정과 생각들, 가치관, 신념, 취향과 호불호의 정서들, 마음결, 욕망 등 그 외 여러
상황과 변주되는 삶의 언저리에서 얻게 되는 깨달음이나 감정 생각 등은 
어제의 나와 또 다른 나로 오늘을 살게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혼란스럽습니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를...
내가 기억하는 어제의 나를 잃어버릴 때이거나 누군가가 나를 아주 오래전의 
시간으로 데려다 놓을 때가 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차라리 잊어버리길 바랐던 순간들과의 마주침은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웠던 순간 조차도 잊혀지길 바라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나의 불일치에서 오는 절망감일까요?
 
기억의 총체가 곧 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일관되게 증명하거나 규정할 수 있는 건 기억밖에 없다는 말이겠지요.
어디서 태어나 자라고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았으며 어떤 것을 좋아하고 무엇을 즐겨 하며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등 나만이 알 수 있는 일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설령 왜곡된 기억이 있다 한들...
 

 
 
홍차와 마들렌의 향기에 갑자기 과거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소설 속 주인공인 마르셀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에는 냄새, 언어, 어떤 모습이나 행위, 풍경, 정서, 감정 등
많은 요소들이 관여하는 것 같아요.
기억으로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질감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복잡다단함도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요.
 
나는 오늘 빗소리에 끌려 지나간 시간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와 화해되지 못한 어떤 기억들, 도망치거나 회피하고 싶은 어떤 기억들을
마음 안쪽 가장 밑바닥으로 밀어내고 살았는데 말이죠..  수치심과 죄의식을 동반하기도 한 그것에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볼까 다시 저 밑바닥으로 밀어낼까 갈팔질팡 중입니다.
결국 이 또한 나를 찾는 과정이겠죠?...
온전한 나로 돌아가기 위해 헤매는 중이라고 나를 다독여봅니다.
 
이렇게 나를 만나는 시간,
어쨌든 못난 내 모습, 맘에 들지 않는 내 모습, 그럴 수밖에 없었던 순수했던 내 모습
그 모든 게 다 나라는 걸 부정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살아내는 게 최선이었음을... 다른 것은 알지 못했음으로...
나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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