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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by 나?꽃도둑 2021.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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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콜란겔로 감독의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이스라엘 영화인 나다브 라피드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만든 <시인 요아브>를 재해석해서 만든 영화다. <시인 요아브>는 제 19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상영한 영화로 인상깊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두 영화의 스토리는 같지만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시인 요아브>와는 관점을 달리하였다. 유치원 교사인 리사가 천재 꼬마시인 지미를 만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다. 미묘한 감정선을 가진 리사 역을 맡은 매기 질렌할의 섬세한 연기와 채 여섯 살이 되지 않은 지미 역의 파커 세박의 놀라운 연기가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시창작교실의 선생님
리사와 꼬마시인 지미

 

유치원 교사인 리사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삶에 회의를 느끼고 예술적 욕망에 이끌려 시창작교실을 다니게 된다. 하지만 시에 재능이 없는 리사는 매번 관심도 특별한 코멘트도 받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에서 다섯 살 반 나이의 지미가 시를 읊조리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보모를 통해 지미에 대해 알게 되고 지미가 입으로 써내는 시를 받아적어 리사에게 건넨다. 리사는 마치 자신의 시인 것처럼 시창작교실에서 자신이 들었던 지미의 첫 시를 발표하게 된다. 

 

 

애나 

애나는 아름답다
나에게는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이 그녀의 노란색 집을 두드린다
마치 신이 보낸 신호처럼

 

 

 

처음 지미가 시를 읊조리는 모습을 발견한 리사

 

그때부터 리사의 시선은 늘 지미에게로 향해있다. 언제 지미의 입에서 시가 흘러나오는지를 주의깊게 지켜본다. 그녀는 집에 가서도 오로지 지미 생각 뿐이다. 지미 휴대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주면서 시가 떠오르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유치원에서 자려고 누운 아이를 깨워 말을 시키고 지미의 시적 감수성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하지만 지미의 시는 의지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가 아니다. 영감을 받는 순간 툭 튀어나오는 것이어서 너무나 즉흥적이고 즉발적이다. 리사는 천재 꼬마시인 지미를 보면서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기 시작한다. 지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창작교실에서 인정받으면서 주목받게 된다.

 

-황소 

황소가 뒤뜰에 홀로 서 있다
캄캄한 어둠 속에
문을 열고 한 걸음 다가갔다
바람은 나뭇가지를 스쳐 가고
소는 푸른 눈을 들어 나를 봤다
살기 위해 몰아쉬듯 계속 숨을 뱉었다
그런 소는 필요 없다 난 어린 소년이니...
그렇다고 말해 줘
어서 그렇다고 말해 주렴

 

 

많은 시간을 지미와 함께 보내는 리사

 

리사는 급기야 지미 아버지를 찾아가 보모를 트집잡아 쫓아내고 자신이 지미 보모 역할을 하게 된다. 수업이 끝난 후 지미와 시간을 함께 보내던 리사는 지미를 너무 늦게 집에 데려다준 이후 화가 난 지미의 아버지가 다른 유치원으로 옮겨버린다. 

리사는 지미의 뒤를 미행하고 옮긴 유치원으로 찾아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는데....

 

시 낭독회에서 자신의 시 두 편을 낭독하는 지미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다. 예술적 욕망에 사로잡힌 한 여자가 자신의 학생인 다섯 살 지미에게서 발견한 재능을 자신의 결핍과 지적 욕망을 채워나가면서 변해가는 복잡한 심리변화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또한 예술을 안다는 것과 경험한다는 것 사이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리사가 지미의 시를 마치 자신의 시인 것처럼 발표하는 것에만 머물렀다면 영화는 단순하고 일차적 욕망만 드러내는 뻔한 스토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리사는 지미의 재능을 알리고 싶어 낭독회에 지미를 무대에 세우고 지미의 시였음을 모두에게 알리게 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건 냉담한 시선뿐. 도둑질한 시를 어떻게 발표할 수 있는지 이해받지 못한다. 

 

결국 선의로 시작된 일이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경찰이 지미를 경찰차에 태우는 순간 "시가 떠올랐어요." 말하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는 사람도 없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다. 닫혀버린 창문 안에서 지미의 작은 외침은 공허하게 울린다. 마치 지미의 재능을 가두는 공범자가 된 기분이 드는 장면이다.

지미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리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녀는 납치범이 되어 체포되었다. 아무도 몰라주었던 지미의 재능을 오로지 리사는 알아봐주고 그것을 더 끌어내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녀의 수고는 허사로 돌아가고 납치범이라는 낙인만 남았다.  리사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모든 걸 알면서도 지미를 데리고 여행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순수예술에 대한 열정과 욕망, 지미에 대한 동경과 안타까움 등 매우 복잡한 내면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은 적당히를 모르는 법, 선의로 시작되어 악의로 마무리되었지만 리사는 지미의 재능이 더 발현되도록 하기 위해 감행한 일에 대해서 만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지미에 대해 안타까움만 커질 뿐... 스크린 너머로

'나의 작은 시인에게 내가 해 줄수 있는 게 여기까지인가?' 하는 리사의 자조섞인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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