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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온갖 잡다한!)

마늘가방

by 나?꽃도둑 2021.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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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9시가 조금 넘은 지하철 안은 뜨문뜨문 자리가 있을 만큼 한산했다. 친구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마늘 냄새가 진동을 했다. "와 진짜 지독하다" 낮게 소근 대며 우리는 마늘을 먹었을 법한 인물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늘을 먹었다는 소리는 고기를 먹었다는 소리고, 고기를 먹었다는 소리는 술을 마셨을 것이라는 추측 아래, 술을 한잔 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친구 옆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 왜 저래?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거야? 미안하지만 우리는 칼국수밖에 안 먹었거든! "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늘 냄새는 흐릿해지다가도 가끔 강하게 풍겨왔다. 정말 예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개인적 취향이라지만 공공장소인 지하철 안의 맑은 공기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고 불쾌감을 주다니 친구와 공공예절에 대해 열을 내어 떠들었다. 그때 몸을 수그린 채 휴대폰을 보고 있던 내 옆의 흑인 남자가 휴 하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 순간 마늘 냄새 오~ 지독한 마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제서야 마늘냄새의 장본인과 맞닥뜨린 것이다. 두툼한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던 마늘 냄새는 너무 지독했다.

 "외국사람도 마늘 먹냐?" " 뭐 엄청 좋아하겠지...마늘을 아예 한 접을 먹었나보군..." 우린 낄낄거렸다.  

 몇 정거장을 지나 친구 옆에 앉은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아주 민첩하게 우리는 한 칸씩 옆으로 옮겨 앉았다. 남자는 힐끗 돌아보고는 인상을 썼다. "마늘 냄새 장본인은 흑인이라고!" 라고 소리치고 싶을 만큼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또 어쩌지 못했다. " 혹시 저 인간 아냐? 도둑이 지 발 저린다고……." 우리는 또 킬킬거렸다.

 

 냄새는 오락가락했다. 종점을 몇 정거장을 남겨두고 친구가 먼저 내렸다. 흑인 남자도 내렸다. 거짓말처럼 마늘냄새가 나지 않았다. 스르르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감고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올 즈음 가방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꺼내기 위해 지퍼를 여는 순간 오 마이 갓! 세상을 뒤엎을 듯한 마늘냄새가 훅 끼쳐왔다. 한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그러고는 폭포같이 쏟아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전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너도 기억 못했냐?"

 "뭘?"

 "칼국수 먹고 내가 깐마늘 사서 가방 안에 넣었잖아!" 그제야 알겠다는 듯 친구도 깔깔깔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어떻게 그걸 기억할 수조차 없었는지 곱씹었다. 두터운 입술의 흑인이 떠올랐다. 눈을 흘기던 남자도 생각났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한 편의 코미디 같은 상황이었지만 인식의 사각지대에 빠져 눈곱만큼도 의심조차 해보지 않았다. 너무나 완벽하고 졸렬하게 나 자신에게 속고, 한 방 먹은 것이다.

 

 다음 날, 마늘 냄새가 배여 있는 가방을 햇볕이 잘 드는 앞 베란다에 입을 벌려 걸어 놓았다. 돌아서려다 말고 어째 그 모양새가 나를 조소하는 듯 일그러져 보여 최대한 동그랗게 벌려 놓았다. 출근을 해서 일을 하면서 마늘 가방이 입 모양새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래 마음껏 비웃어라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미친 듯 웃어라 마늘 냄새 푹푹 풍겨 가며 웃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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