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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영화] 로맨스 조

by 나?꽃도둑 2021. 1. 24.

출처 다음영화

 

제 16회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가상 옐로우 파인트리상을 수상한 <로맨스 조>는 이광국 감독의 첫 장편이다. 5년간 홍상수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한 이광국 감독은 누구나 꿈꾸는 마법 같은 이야기에 대해 기존 영화 문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로맨스 조>를 통해 보여준다.

 

3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스타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이감독이 도저히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자 다음 차기작을 위해 시골에 갇혀 지내게 된다. 심심풀이로 부른 다방레지에게서 우연히 '로맨스 조'의 기묘한 러브스토리를 듣게 된다. 다방에 한 아이가 '초희'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를 찾는다며 찾아오게 되고, 다방레지는 배달 간 여관에서 방을 잘못 찾는 바람에 '로맨스 조를 만나게 된다. 자살을 기도했던 로맨스 조는 다방레지에게 첫사랑 초희와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는데...

 

서사 구조의 독특함은 <로맨스 조>의 가장 큰 장점이다. 여러 지점에서 발화된 이야기가 한 지점을 향해 모이는 그 순간, 허구인지, 실제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든다. 본디 이야기가 가지는 속성은 바람을 타고 산을 넘고 시간이 흐르면서 말하는 이들의 욕망과 문화와 섞이면서 차용되고 변용되어 나타나는 법이다. 마치 굴려놓은 눈덩이에 손, , , , 입 등을 제각각 붙이는 격이다. 여기서 <로맨스 조>가 실제의 이야기든, 다방레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살을 덧붙인 상상의 이야기든,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겐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야기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재미, 감동, 스릴, 신화, 섹슈얼리티 등의 여러 가지 요소는 허구의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실제의 이야기처럼 감정이입을 한다거나 자신의 경험과 삶 속으로 이야기를 끌어옴으로써 완결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어린 로맨스 조와 초희

 

 

세상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취향도, 욕망도 가지각색인 만큼 이야기 밖에 두르고 있는 외피도 무서운, 낭만적인, 아름다운, 재밌는, 신나는, 감동적인, 거짓말 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믿기 어려운, 등등의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져 간다. 왜 사람들은 이야기에 목말라 하는 것일까?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과 영화, 지면을 장식하는 가십거리는 무엇을 말하려 하고, 사람들은 무엇을 듣고자 하는 것인가? 300만 관객을 동원한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의 모텔에 투숙하지만 아무리 쥐어짜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러다가 커피를 배달하러 온 다방레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솔깃하게 되는데 여기서 이 감독은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지만 또한 재생산 해내리라고 유추할 수 있는 잠재적 생산자이기도 하다.

 

 

국문과 출신의 다방레지(신동미 분)
소년역(좌 류의현), 로맨스 조(우 김영필 분)

 

우리는 잔혹성에서, 폭력성에서, 사실성에서 소설보다 영화보다 앞질러 가는 거짓말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갈구하고 소비한다. 이야기들이 위로가 되고 욕망의 배출구가 되고 때론 삶을 추동하는 힘이 되곤 하지만 이야기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생산되고 소비되고 버려져야 하는,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비우고 다시 채우는 일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기에 가능하다. 어쩌면 영원불멸의 이야기는 환상인지도 모른다.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미이라와 같이 텍스트 안에 박제되어 있을 뿐이다.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재해석, 재생산 되어 나와야 하는데, 그것도 아주 잠시다. 이야기는 발화되는 그 지점에서 청자와 화자가 함께 만날 때만이 생명력을 담보 받을 수 있다.

 

 

 

초희와 만났던 장소에서 어슬렁거리던 조는 경찰관을 만나게 되고, 주민번호를 조회하던 경찰관은 로맨스 조에게 당신의 주민번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으니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라고 한 것은, 이야기의 허구와 소멸성과 한시성을 나타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속의 이야기, 이야기 밖의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고설키어 가는 <로맨스 조>는 사람이 아닌 이야기가 주인공인 셈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살아 있었던 조가, 이야기가 끝난 시점에는 다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로맨스 조는 이야기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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