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

by 나?꽃도둑 2021. 1. 11.
반응형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투덜대며 두 번에 걸쳐 보고서야 각본과 연출을 맡은 찰리 카프먼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뭐 이런 영화도 있지..."
하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스토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가끔 이런 영화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준다.
마치 퍼즐맞추기 게임을 하듯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래서 뭐가 어찌 됐다고?...짜증과 탐구정신을 동시에 유발시키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불친절하고 난해한 영화다. 여자가 고질적 어긋남 때문에 헤어질 것을 고민하는 것처럼 영화 또한 관객의 기대와는 한참 어긋나 있다. 시간의 연속성 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게 아니라 현재인지 과거인지 모르는 시간이 마구 엉켜있고 끝없는 반복속에서 이야기가 우로보로스처럼 꼬리를 물고 계속 그 자리에서 맴을 돌고 있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500조각이 넘는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다. 퍼즐 조각을 쥐고 어디부터 놓아야 쉽고 빠르게 완성할 수 있을지 고심했다. 일단 전체 그림을 파악해야 퍼즐이 완성되듯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축은 제이크다. 학교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노인 제이크가 젊었을 때의 제이크로 돌아가 상상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영화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제이크와 여자친구는 시골에 사는 제이크의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기 위해 눈 속을 달려간다. 여자친구는 제이크를 좋아하면서도 고질적 어긋남 때문에 이제 그만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은 끊임없이 대화하지만 동상이몽을 꿈꾸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매우 흥미롭다. 부산국제영화제 때 본 <윈터 슬립> 이후 인문학 주제들로 채우는 대화에 귀가 솔짓해지는 경험을 또 하게 된 셈이다.

취향에 따라 이 장면이 지겨울 수도 있지만 폭설에 갇히듯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부모님 농장에 도착한 제이크와 여자친구. 
여기서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야기의 시점이 자주 바뀌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소개할 때 여자친구의 이름과 직업이 계속 바뀌거나 부모님의 모습도 젊거나 늙거나 임종직전으로 바뀐다.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걸려오는 전화기 속의 같은 목소리의 정체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제이크가 어릴적 목격했던 구더기가 들끓던 돼지의 죽음과 어릴적 사진, 지하실로 내려가던 계단에 있던 그림 등 제이크의 부모님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제이크의 어린시절은 무엇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돌아가는 길에 들른 아이스크림 가게는 또 뭔지....

 

 

모든 것은 노인 제이크의 머릿 속에서 일어난 일이다. 현실과 판타지가 섞여 어떤 장면이 현실인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노인 제이크가 나오는 장면만 현실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성실뱃지보다 총명뱃지를 받고 싶었던 어린 제이크,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꿈이 좌절되고 사람관계도 점점 어려워지자 혼자 많은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던 제이크, 술집에서 우연히 봤던 여자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연락처를 물어보지 못해 그 여자를 상대로 여러 버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시점이 자꾸 바뀌었던 것은 여자친구를 언제 부모님께 소개할지 몰라 적당한 타이밍을 찾느라 이랬다 저랬다 한 것으로 보인다.

 

노인 제이크

 

결국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여자친구는 끝이 없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이제 그만 끝내야 할 때라고 중얼거리고 둘은

다시 돌아오게 된다.

제이크는 삶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포장한다.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노벨상을 받는 제이크를 상상하게 된다.

노인 제이크는 옷을 다 벗고 벌거숭인 채로 어릴 적 보았던 돼지를 따라간다. 폭설이 내리는 밤 차안에서 그는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사실 두 번 봤는데도 정확히 이해했는지 알 수 없다. 놓친 부분도 있을 것이고 오독을 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제이크라는 한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들여다 본 것, 이것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노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아쉬움과

회환, 후회와 절망, 상처와 어린날의 추억과 충격적이거나 인상적인 기억들의 파편, 좌절된 꿈의 조각들을 가슴에 품고 고독하게 살아야 했던 제이크라는 한 남자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현실은 별 볼일 없이 고독하고 참혹하였으나 상상속에서의 제이크는 여자친구와 연애도 하고 노벨수상자가 되는 성공적인 삶을 이루어냈다

제이크는 예외적인 삶이 아니라 지극히 보편적인 삶이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상상 속에서 이루어 내는 법을 우리는 알고 있다. 궁색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로또 1등의 꿈을 실현시킬 수도 있고, 제이크처럼 여자친구를 이상에 맞게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상상속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마음대로 시점과 설정, 상황을 이랬다 저랬다 바꿀 수 있다. 한마디로 엿장수 마음대로 하면 그만이다. 

끝없는 반복 속에 우리의 삶이 갇혀있다면 더더욱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요즘 같이 발이 묶인 때라면 더더욱...

어디든 떠나고 무엇이든 되라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