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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앞에서 서성거리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by 나?꽃도둑 2021.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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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영화

201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세계적 거장인 캔 로치 감독의 작품이다.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 상영되었고 BIFF시민평론단 사이에 꼭 봐야 할 영화 1순위에 올랐던 영화다.

몇 번 상영하지 않은 탓에 티켓전쟁이 일어날 만큼 화제작이었다. 그리고 12월에 국내 개봉이 결정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케이티와 두 자녀(데이지와 딜런)

 

영화는 평생을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이 심장병으로 일을 계속 할 수 없게 되면서 시작된다. 다니엘은 의사의 소견에 따라 일을 할 수 없어 질병수당을 신청하지만 담당관은 점수가 미달된다는 이유로 기각통보를 한다. 재신청을 하려면

전화를 기다려야 하고 전화는 오지 않는다. 답답한 다니엘은 실업수당을 받으려고 구직센터를 찾아간다.

거기서 케이티라는 여성이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수당지급을 거부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도와주려다가 소란죄로 함께 쫓겨난다.

런던 노숙자 쉼터에서 뉴캐슬로 이사 온 케이티는 데이지와 딜런을 키우는 싱글맘으로 둘은 친구가 된다.

다니엘은 고장난 변기와 집 곳곳을 고쳐준다. 전기가 끊긴 걸 알고 몰래 돈을 두고 가기도 하고, 대학공부를 마치는 것이 꿈인 케이티를 위해 책상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친구가 된 다니엘과 케이티가족

 

컴퓨터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세대인 다니엘은 실업수당 인터넷 신청을 하기 위해서 여러 곳을 다니며 고군분투하다 겨우 이웃집 '차이나' 라는 청년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의사소견상 일을 할 수 없는데도 구직활동을 해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구직활동 교육을 받고 이력서를 들고 발품을 팔아 이 동네 저동네 다니는 다니엘.

하지만 담당관은 구직활동 증거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제재조치와 실업급여를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다니엘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관공서를 나온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나타나 실업급여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한다. 그냥 질병수당 항고신청을 하겠다고 하자 그나마 친절한 앤은 이름을 빼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만류한다.

 

 "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나와 관공서 벽에다 페인트로 시원하게 갈겨버린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상담전화의 구린 대기음부터 바꿔라!

 

직원이 나와 제발 생각 좀 하고 행동하라고 말하지만 지나던 사람들은 다니엘의 시위에 환호하고 응원을 보낸다.

 

한동안 보이지 않는 다니엘 아저씨가 걱정돼 찾아온 케이티의 딸 데이지
가장 마음 아팠던 장면. 케이티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식료품 지급소에서 통조림을 뜯어 허겁지겁 먹던..

모든 것이 막힌 다니엘은 집 안에 있는 가재도구를 팔아 겨우 삶을 이어나간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지만 일자리를 못 구한 케이티와 함께 식료품 지원소를 찾아간다.

며칠을 굶었던 케이티는 구석에서 허겁지겁 통조림을 따서 먹는데... (정말 많이 울컥했던 장면이다.)

결국 궁지에 몰린 케이티는 매춘으로 돈을 벌게 되고...그걸 알게 된 다니엘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며

케이티를 설득한다. 마치 아버지와 딸처럼 서로를 돌보고 서로에게 힘이 되려고 노력한 다니엘과 케이티. 

 

드디어 질병수당 항고일 날이 잡히고 다니엘은 케이티와 함께 가게 된다. 식은 땀을 흘리며 긴장하는 다니엘에게

가서 세수라도 하고 오라고 한다. 다니엘은 화장실로 향하고 얼마 뒤 직원이 다급하게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오전 9시 장례식 비용이 싼 가난뱅이의 장례식이 열린다. 바로 다니엘의 장례식이다.

케이티는 다니엘이 항고하던 날 마직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적어온 종이를 꺼내 읽는다.

 

"나는 보험회사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개도 아니고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나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구호를 내걸고 복지국가를 외치던 사회복지의 허와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복지국가의 구호가 궁색하게 느껴질 만큼 씁쓸한 영화였다. 보편적복지를 지향한다고 해도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영화에서처럼 절차적 형식에 목을 매는 융통성 없는 관료주의자들 때문에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절차적 행정주의에 수없이 실패하며 수모를 당했던 다니엘은 자신의 존엄을 위해 벽에 시위를 하며 관료주의를 비웃었다. 얼마나 통쾌한 복수인가! 하지만 세상은 그런다고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아주 작은

행위와 같으니 결코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니엘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도 하다. 원칙만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는 융통성 없는 공무원들과 절차 행정주의에 목을 매는 시스템이 있는 한 다니엘이 처한 답답한 상황이 나의 상황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에서 억울한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버스기사였던 분이 인공심장수술로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었다가 일을 못할 만큼의 상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취직을 해야만 했는데 일터에서 쓰러져 사망하였다는 것을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국가가 오점 없이 완벽하게 케어할 순 없겠지만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다니엘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시스템이 문제라면 시스템을 수정보완하고 사람이 문제라면 교육을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찾아 사각지대를 메꾸어야 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고발성이 강한 다큐멘터리보다 더 강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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