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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온갖 잡다한!)

토끼의 쇼생크 탈출기

by 나?꽃도둑 2020.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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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학교에 드디어 토끼 4세대가 태어났다. 흰색 한 마리와 회색 두 마리, 흰색 회색이 반반 섞인 한 마리까지 모두 네 마리다.
태어난지 보름 정도 되었고 손바닥 만한 크기로 자랐다.
쫌쫌거리고 먹는 모습과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폴짝 폴짝 뛰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오그라들 정도다.
귀여워도 너무 귀엽고 앙증맞다.
하지만 토끼가 자꾸 새끼를 낳는 것에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다. 닭 여섯 마리 공작 두 마리, 금계 한 마리가 한데 모여 사는 동물농장이 토끼로 뒤덮히지나 않을까 해서다.


토끼들이 점점 불어나 우리 밖으로 차고 넘치는 악몽을 꾸던 날,
먼저 출근한 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텃밭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토끼 사진과 함께 탈출소식을 알려왔다. 

 

 

토끼들의 탈출은 그렇게 2세대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다섯 마리를 데리고 왔는데 2세대 때 다섯 마리가 태어났다. 그놈들이 자라자마자 짝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토끼 습성상 장소가 협소하면 분가를 한다는데 그렇다고 다른 곳에다 신방을 차려 줄 수도 없었다.
그날 탈출한 토끼 중 한 마리가 죽었고 한 마리는 행방불명 되었다. 
남은 토끼들을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우리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토끼가 탈출하면서 파놓은 땅굴을 죄다 막아놓았다.

 

 

 


토끼 탈출은 그날 이후 세 번인가 더 있었다. 막아 놓으면 다른 곳을 파고 나왔다.
그러는 사이  3세대가 네 마리 태어났고 탈출로 인해 두 마리가 또 죽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최근에 일어난 탈출 사건이다.

그날은 새벽부터 비가 왔다. 두 분 선생님은 다른 일정으로 나 혼자 출근하는 날이었다.
나는 토끼 탈출사건이 있은 후부터 버릇 하나가 생겼는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주위를 살피곤 했다.
"제발....제발..."
그날도 그러고 있는데 흰색 토끼 한 마리가 놀리듯이 내 앞을 훅 지나갔다.
망했다!... 
하필 혼자 있을 때 탈출하다니 토끼몰이를 할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동물농장 근처로 다가갔다.
허걱~ 
세 마리가 물에 빠진 생쥐꼴로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머리를 굴려야 했다. 토끼몰이를 아무 생각없이 하면 토끼 뒤꽁무니만 쫓아 미친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된다.
전에처럼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안 잡혀 열받아서 온갖 육두문자를 남발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만큼은 토끼한테 밀리고 싶지 않았다. 만물의 영장이자 호모사피엔스답게 처리하고 싶었다.
일단 동물들을 옆 칸에다 죄다 몰아 넣고 못 넘어오게 막았다.그리고 텅 빈 우리의 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가방과 우산을 내려놓고 긴 막대기를 잡았다. 이제 살금살금 한 놈씩 우리로 몰면 된다.
그런데 시작부터 계획과 어긋났다. 토끼들은 나를 보자마자 사방으로 달아났다.

이제 할 일은 한 마리씩 찾아내 우리로 몰아가야 한다.
나는 막대기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죽을 힘을 다해 두 마리는 우리로 몰아넣었는데 한 마리는 아무리 찾아다녀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토끼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그래서 포기하고 퇴근했다.
(휴, 그날 개고생한 거 생각하면...)

 

다음 날 아침,
나는 동물농장 앞에서 사라진 흰 토끼와 딱 마주쳤다.
온 몸에 흙투성이였고 조금 지쳐보였다.
수월하게 우리로 몰아넣고 나니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여간 궁금한게 아니었다.

 

그리고 며칠 후,
4세대인 토끼 네 마리가 태어났다. 놀라운 일은 뒤늦게 나타난 토끼가 어미였다는 사실이다. 땅굴을 파고 그 속에다 새끼를 낳고 곁을 떠나지 않아서 알게 되었다.  새끼를 낳기 위해 탈출을 한 것인지 그냥 따라나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들개와 다른 짐승들의 위험을 피해 살아 돌아온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토끼에서 있어 좁은 우리는 감옥이었을까?
쇼생크 탈출의 앤디처럼 자유를 항한 투쟁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었을까?
참으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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